Page 122 - 우리는 민원담당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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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수화기 너머 점점 커지는 목소리에 일방
적인 분노만 가득하다. 반말과 욕설이 귓가에 메아리가 되었다.
가슴 저 밑에서 알 수 없는 무엇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숨기고 긴 통화 끝에 나는 또다시 ‘감사합니다’로
인사를 맺어야 했다. 절망과 한숨만이 내 속에 가득했다.
각각의 사정과 이유를 들고 찾아오시는 민원인들을 매일 상대한다.
그만큼 상대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는 능력과 복잡한 시스템을
다루는 전산 활용 실력도 늘었다. 하지만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민원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수긍하시는 분이 계시지만
이렇게 반말과 욕설로 무작정 일방적인 주장을 하신 분들도 만난다.
그럴 때면 짙은 아침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매년 늘어가는 주름과 함께 농업인들이 방문하신다. 옷과 장화에
묻은 흙이 여전히 농사일로 바쁘시다고 말해준다. 평생을 흙과 함께
사셨음에도 농사를 물려 줄 사람이 없고, 그렇다고 땅을 놀릴 수도
없어 아직도 여전히 흙 속에 계신 것이다. 불현듯 이름을 쓰지 못해
굽은 손가락을 떠시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러자 무거운 마음을
뚫고 봄 새싹처럼 새로운 다짐이 올라왔다. 가끔은 감당할 수 없는
민원을 만날 지라도 조금 더 친절해 보자는…. 그분들의 입장을
보다 더 이해해 드리자는….
그렇게 내 도움이 필요한 민원인들에게 최선을 다하자고 혼자
속삭여 본다. 코로나19의 치료에 최선을 다하는 고마운 의료진
처럼…. 그런 생각과 함께 어둑할 즈음 사무실을 나서는데 아직
남아 있는 복사꽃이 퇴근길을 훤하게 밝힌다.
112•2020년 농관원 민원 수기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