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우리는 민원담당 입니다.
P. 16
그날 오후, 계장님과 경영체 신청 농지 2곳을 조사하러 나갔다.
첫 번째 농지에는 잡풀만 무성했다. 두 번째 농지에는 매실나무와
감나무 몇 그루, 그리고 컨테이너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항공
사진엔 드러나지 않았던 묘지도 군데군데 있었다. 농사를 짓는다고
신청한 농지 2곳 모두 농사의 흔적은 없었다. ‘주적심허(做賊
心虛)’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A씨의 ‘제 발 저림’은 반말과 큰 소리로
변하여 내 마음을 다치게 하고, 다른 민원인 분들에게도 피해를
끼쳤던 것이다.
농업경영체 등록은 보류되었다. A씨에게 ‘농작물을 심고 연락을
주시면 등록기준에 맞는지 확인 후 처리해 드리겠다.’ 말씀 드리고
이번 일을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A씨의 민원은 마음에 상처
하나를 더 새기고, 허무하게 끝났다.
하지만 크게 얻은 것도 있었다. 이번 일로 감사하고 고마운 분
들이 옆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나서 주신 이장님 같은 분들이 계시다. 함께 일하는 든든한 동료
들도 있다. 불편한 상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예기치 못한
일 또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무거운 짐은
같이 들어 나르고, 고충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들이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규정을 잘 숙지해 전문성을 높이고, 더욱 이해하기 쉬운 설명과
친절한 상담으로 많은 분께 도움이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6•2020년 농관원 민원 수기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