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우리는 민원담당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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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셨다. 사무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너무 커서 내
억울함이나 상처는 돌볼 겨를도 없었다. 마음을 다잡고 그분의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받은 상대방의
거친 숨소리가 소장님께 쏟아냈을 막말과 욕설을 짐작케 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원산지
업무를 보는 박○○입니다. 제가 업무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전화를
받는 바람에 신속하게 업무처리를 도와드리지 못하고 선생님의
귀중한 시간을 허비해서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다야? 뭣도 모르면서 전화를 왜 받아? 아니, 당신
거기서 그 따위로 하면서 그러고도 돈 받고 일하는 거야? 내가
낸 세금이나 축내고, 백 번 사과해!!!”
순간 억울함, 서러움 따위의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지만, 이미 여러
명이 나로 인해 고생한 상황에서 이 일을 매듭지을 다른 방법은
없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
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
몇 번을 했는지 헤아리지도 못할 만큼 연신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던 어느 순간, ‘진짜 멍청하네, 죄송합니다 곱하기 백 하면
되잖아?’라는 비아냥거림에 이어 ‘딱’하는 신경질적인 파열음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걱정스레 나만 바라보고 있을 직원들의
표정이 눈에 선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날이 어떻게 마무리가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퇴근을 했고, 무슨 반찬으로
저녁을 먹었고, 어떻게 잠자리에 들었는지. 그날은 너무나도 선명
10•2020년 농관원 민원 수기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