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우리는 민원담당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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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아들기 기다렸다. 그런데, 점점 소리가 커진다. ‘지금쯤이면
직원 누군가 올라와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누가 문을
똑똑 두드린다.
“네, 들어오세요.”
“소장님, 농업경영체 변경등록을 하러 오신 어르신께서 화가 많
이 나셨습니다. 며칠 전부터 농지 추가 건으로 방문하셨답니다.
우리 경영체 주임들이 자세히 설명해 드렸는데요. 이해를 잘 못
하시고 역정을 내시며 고함을 지르십니다.”
경영체 담당 김 주무관이다. 상기되어 벌그레한 얼굴로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김 주무관의 말과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가 오버랩
되어 들렸다. 지금 상황이 어떤지 더 들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민원실의 유리문 너머로 백발의 어르신이
보인다. 본가의 아버지 같으신 분이다.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연세는 팔십이 넘어 보이고, 그 옆에 어르
신의 아내로 추정되는 할머니가 계셨다. 그 짧은 순간 어르신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가라앉힐까를 생각했다. 별다른 방법은 없어
보였다.
최대한 살갑게 말씀을 드렸다.
“아버님, 제가 여기 소장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나요?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소용이 없었다. 큰불이 나 불길이 활활 치솟으면 끄기 어려운
것처럼 이미 화가 날 때로 나신 어르신의 안중에는 내가 보이질
않는 듯했다. 오른손에 쥔 서류를 사뭇 흔드시며 경영체 주임들에게
34•2020년 농관원 민원 수기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