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우리는 민원담당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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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질 끌고 해당 농지에 도착했다. 역시나 기적은 없다. 벼 이삭은
커녕 오랫동안 농사를 짓지 않은 탓에 맘대로 자란 잡초만이
무성한 잎 사이로 햇살을 튕겨내고 있다. 저쪽에서 어제의 농업인이
다가오신다. 그 모습이 태산이 되어 다시 가슴을 짓누른다.
마음을 추스르고 벼 나락이 아주 실하다고 너스레를 떨어본다.
그 분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셨다. 나이는 먹었어도 벼농사에는
따라 올 사람이 없다며 자신감도 드러내신다. 기회는 이때다.
재빨리 지적도를 내보이며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쌀 변동 직불
금은 벼를 심어야 받을 수 있어요. 선생님이 쌀 직불금을 신청한
땅에 아무 것도 심겨져 있지 않잖아요. 그러니, 휴경 처리해야 하고,
대신 농지 형상은 유지하고 있으니 쌀 고정 직불금 19) 은 받으실
수 있어요.” 일순간 농업인의 동공이 흔들린다. 본인도 처음부터
충분히 알고 있으신 눈치다. 더 정확히 말하면 휴경한 논도 쌀 변동
직불금을 받고자 일부러 화를 내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내 눈을 의도적으로 피하시며 그런 건 모르겠고
저기 휴경지는 내 논도 아니고, 자기는 지적도도 볼 줄 모른다고
우기신다. 맘속 출렁거리는 지진을 뒤로하고 그러시다면 논 측량
해 볼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러자 돈이 많이 드는 측량을
뭣 하러 하냐며, 내 땅을 내가 잘 알지 누가 아느냐고 냅다 소리를
높이신다. 그리고선 사무실에만 있는 놈들이 뭘 아냐며 논에 있는
피를 뽑아 저 멀리 냅다 던진다. 진흙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어디
19) ‘98~’00년까지 논농업에 이용된 농지에 농지의 형상 및 기능을 유지할 경우
지원해 주는 직불금
수기모음•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