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우리는 민원담당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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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를 나오라며 큰소리를 친다. 나는 이 지리멸렬한 공방전 속에서
본연의 업무를 되새기며 그를 설득하기 위해 더없이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약점을 잡았다는 듯 ‘법적 근거’에 대해서만
계속해서 자기주장을 펼쳤다. 대화는 더 이상 진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듯 끝날 것 같지 않던 사건은 허무하게도, 2시간이란
시간을 무색하게 한 채, 아마도 그가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홀연히
떠나면서 조용히 마무리 되었다. 나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그의 민원 후폭풍을 예상했지만, 생각과는 달리 아무 문제없이
일단락되었다.
다음 날 그가 등록 신청한 농지를 실제로 가보았다. 잡풀이
무성한 곳이 대다수였다. 심지어 항공사진에는 보이지 않던 묘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상태로는 농업경영체 등록이 어려웠다.
그가 숨기고 싶었던 것이 이것이었을까. 이것 때문에 소란을 피운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해프닝이었다.
이날 나는 그와의 2시간으로 공무원이 민원에 시달려 자살까지
이르렀다는 뉴스를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타인의 인격을 짓밟아
가며 막무가내식으로 나오는 민원인에 대해 법·규정만으로 대처
하기는 너무나 힘들었다. 공직자가 친절·봉사·정직이라는 의무를
기본으로 법·규정만을 지키며 업무를 처리하는 데는, 여러 돌발
변수가 도사리고 있었다. 현장에서 규정만으로는 명확하게 해결할
수 없는 애로사항이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런 애로
사항을 공유한다면 훨씬 더 나은 민원인 응대가 되지 않을까?
또한, 국민들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노력하는 우리 공직자들을
수기모음•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