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우리는 민원담당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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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해서 제출하셔야 해요.”라고 안내했다. 그러자
날이 선 목소리로 내 말을 끊어버리고 설명에 전혀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직불금을 잘만 받았는데, 왜 안 된다고
해! 땅 주인들 죽은 지가 언제인데 이제 서류를 제출하라고 하는 겨,
나 못 가져와! 그냥 당신이 알아서 기간 넣으면 되지. 나도 공무원
해봤는데 대충하면 되지 뭐 이렇게 깐깐하게 농민을 힘들게 해!”
아무것도 들으려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번호표를 들고 대기
중인 다른 민원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업무 담당자인 계장님께
간절한 눈빛으로 구조요청을 했다. 그러자 계장님은 다가와 그
민원인을 한쪽으로 모시고 가서 설명한다. 다른 민원인을 응대하고
있는 와중에도 내 신경은 온통 그곳을 향해 있다.
다른 민원인 몇 분을 더 응대하고 눈을 돌려 계장님 쪽을 바라
봤다. 30분 넘게 이어진 민원인 응대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피곤이
가득한 얼굴로 긴 한숨을 내쉰다. 걱정스러운 눈빛이 닿았을까,
슬쩍 내 자리로 와서 신경 쓰지 말라고 “나도 공무원이지만 공무
원으로 퇴직한 사람이 더 힘드네요. 나는 퇴직하면 절대 민원인으로
안 올게요.” 하면서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그러고 나서야
나도 참았던 숨을 내뱉는다.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도 많았지만, 나쁜 기억을
떠올리기보다는 즐겁고 보람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가 농관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지금까지 만난 사람
보다 앞으로 훨씬 더 많은 민원인을 응대하게 될 것이다. 어떤 상황과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나의 일터를 지켜나가고 싶다.
52•2020년 농관원 민원 수기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