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 - 우리는 민원담당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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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깨밭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런데 본인을 믿어달라며 신신당부
했던 그의 들깨밭은 어느새 황무지로 변해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지만 없는 들깨가 보일 리 없었다. 잡초만
무성한 거친 땅만 펼쳐져 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사무소로 돌아온 나는 이행점검 결과를 알려
드리기 위해 K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농관원 부여사무소 OOO입니다. 밭 직불제 이행
점검 차 선생님의 들깨밭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그 농지는 실제로
경작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작물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직불제 뿐만 아니라 농업경영체 등록이
제외되실 수 있어요.”
묵묵히 듣고 있던 민원인 K씨는 별안간 나의 말을 자르며 반말과
거친 말들을 쏟아냈다. 놀란 마음에 어쩌지 못하고 수화기를 들고
만 있는데, 당장 찾아가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확 끊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원실 문이 ‘벌컥!’ 열렸다.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을 한 K씨가 씩씩거리며 찾아왔다.
“나한테 전화한 사람 누구야?! 당장 나와!”
민소매 사이로 보이는 두꺼운 팔뚝에는 거대한 용들이 꿈틀
거리고 있었다. 나는 마냥 시선을 회피하고 싶었다. 두려움에 온
몸이 떨렸지만, 최대한 놀란 마음을 숨기며 대화를 시도하였다.
“선생님, 제가 전화 드렸습니다. 진정하시고 이쪽에 앉으세요.”
가까이서 보니 용들 옆에는 무시무시한 봉황도 한 마리 있었다.
“전화로도 말씀 드렸지만 밭 직불금 수령은 힘드실 거 같습니다.
수기모음•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