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3 - 우리는 민원담당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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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상속농지를  임차하여  경영체  등록신청을  할  경우가  있다.  이
             때는  토지면적의  과반수  이상  지분을  가진  소유자와  맺은  임대차

             계약서를  우리  원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신청하신
             농지의  소유주는  현재  사망하였고  따라서  여러  지역에  살고  있는

             상속자들에게  임대차계약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연로하신
             분에게  그게  어디  쉽겠는가?  임대차계약서는  받기  힘들고  동네

             이장은  면사무소  가봐라,  면사무소에서는  그  업무는  농관원이  하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고생이  훤히  느껴졌다.  그러나  규정이  그런

             걸  어떻게  할  것인가?  할아버지는  하루는  전화로  또  하루는  방문
             으로  불만을  토로하셨다.  그  힘든  사정을  알면서도  나중엔  나도

             점점  지치고  짜증이  났다.
                 ‘나보고  어쩌라고요!!!’

               그렇게  며칠이  지난  아침  출근  시간,  갑자기  ‘오늘  하루도  친절히’
             라는  말이  마음속에서  어떤  울림처럼  반복되었다.  ‘그래,  연세  많은

             민원인이  저렇게  애타하시는데  내가  친절히  도와드려  보자.’  사무
             실에  도착하자마자  이장님께  전화를  걸어  그  농지  상속자의  연락

             처를  알아냈다.  그리고  상속자와  할아버지를  사무실에  오시도록

             하여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게  했다.  담당자인  내가  하기에도  벅찬
             이  일을  할아버지가  어떻게  하실  수  있었을까?  그동안  규정만을
             먼저  내밀었던  것이  죄송스럽게  생각되었다.  항상  화가  나  있는

             듯한  할아버지께서는  고맙다며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셨다.  잠시

             자리를  비운  할아버지가  검은  봉지를  건네시며  “그동안  미안했네.
             본심은  아니어.  화도  나고  방법이  없어  늙은이가  추태를  부렸네.



                                                                수기모음•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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