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0 - 우리는 민원담당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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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여느 때처럼 농지를 점검하고 있었다. 목표지역을 태블
릿PC의 지도와 비교해보니,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가 포함된 땅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직불금은 농로만큼의 면적을 빼고
신청해야 했는데 전부 신청한 것이었다. 포장된 농로의 면적만큼
직불금 부적합 면적으로 제외해야 하는 상황이다. 증거를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데 집중하는 사이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으며
내 앞에 다가와 있었다. “어디서 오셨슈?”라며 툭 하니 질문을
던지신다. 찾아온 이유를 간략히 설명 드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중, 그 분이 바로 직불금 신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운
좋게도 현장에서 부적합 농가를 만났다. 바로 서명을 받으면 된다.
비록 명백한 부적합이더라도 금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농가에게
전달은 항상 조심스럽다. 혹여 노인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직불금
신청한 면적 중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 면적은 농사를 짓지 못하기
때문에 직불금이 안 나가요.”라며 천천히 말씀드렸다. 안타깝게도
나의 노력이 닿지 않았다.
노인은 “뭐?”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이 농로로 활용하게 해달라고해서 시멘트 포장을 허락해
주었는데, 그 일로 직불금이 줄어드는 것은 너무 부당하다는 얘기
였다. 순간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냥 모른 척 할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아이고,
많이 서운하시겠어요. 직불금은 농사짓는 땅만큼만 주는 거잖아요.
좋은 뜻으로 농로 만드셨으니,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해 주셔요.”라며
분위기를 바꾸려 노력했다. 중간중간 지팡이를 들며 화를 낼 때면
70•2020년 농관원 민원 수기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