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8 - 우리는 민원담당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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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하여 최대한 빨리 처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려도 자신의
입장만 계속해서 말할 뿐이었다. 그렇게 그날 기억된 그분은 그
후로도 전화로 계속 재촉하셨고, 어떤 날은 사무실에 갑자기 찾아
와서 지금 당장 같이 가서 확인하자고 무턱대고 요구하기도 했다.
내 책상에는 그 시간에도 수북이 쌓여있는 농업인과 농지 확인
신청 서류들이 있는데 자기 것부터 해달라는 A씨는 ‘내가 심은
작물이 어디에 얼마나 심어져 있는지’와 같은 농사일에 대한 이야
기는 없었다. 오로지 관심사는 국가나 지자체에서 주는 돈을 받아
내는 것인 양, 보조금 신청 이야기만 했다. 환경을 지키며 국민들
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농업인의 보람은 보이지 않아 씁쓸했다.
현장 확인을 나가기 전날, 농업경영체 등록신청을 위해 그가
제출한 서류를 살펴보았다. 농가가 스스로 농사짓는다고 우리 원에
제출한 경작사실확인서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경작사실확인서에 기재된 이장님에게 전화로 물었다.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경작사실확인서에 도장을 받으러 왔는데 나는 그
사람이 농사를 짓는 것을 모르니까 그냥 돌려보냈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근처 농지를 경작하고 있는 마을 분들에게도 물었다.
그분들도 확인을 받으러 온 사람이 있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어서
그냥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 서류는 담당자인 나를 속이고, 우리
기관을 속이려고 거짓으로 작성된 서류였다.
다음날 그 농지에서 실제로 농사를 짓는다는 분을 만나 확인도
했다. 기만당한 기분으로 사무실로 돌아와서 최대한 감정을 억누
르고 “현장에 나가보니 농지는 선생님이 아닌 다른 분이 농사를
78•2020년 농관원 민원 수기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