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우리는 민원담당 입니다.
P. 86
반면교사(反面敎師)
경험 · 최희경
글 · 최희경, 이희영
한창 일할 나이인 내 나이 사십이 되던 어느 해, 십 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내가 원해서 그만둔 것이 아닌지라
혼란한 머리로 무료하고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때 한
지역신문에서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농산물품질관리원이라는 기관, 농업경영체 34) 등록이라는
업무였지만 ‘원서접수 마감 하루 전’이란 문구에 홀린 듯 부랴부랴
서류를 준비하고 제출하였다.
채용의 기쁨도 잠시, 볼 때마다 헷갈리는 생소한 지적도를 보면서
논, 밭 등 현장을 헤치고 다니는 일은 나를 지치게 했다. 그러나
정작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현재 모습과 다른 지적도도 아니고,
거칠고 먼지 나는 현장도 아니었다. “내가 내 땅에 평생을 걸쳐
농사짓고 살고 있는데 뭘 인제 와서 농업경영체 등록이란 걸 하라는
거요?”, “이거 등록하면 돈 주나? 이득도 생기지도 않는 것을 한답
시고 귀찮게 하지 마쇼!”라며 내가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그들을
설득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무시하고 화부터 내시는 분들이었다.
34) 농작물을 재배하거나 가축 및 곤충 등을 사육하는 농업인과 농업법인
76•2020년 농관원 민원 수기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