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1 - 우리는 민원담당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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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을  먹는  소들이  퐁퐁  살찌는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생전에
             아버지께서는  소를  몇  마리  키우셨다.  소에게  먹일  풀을  베고,

             볏짚을  모으시며,  우리  소들  이쁘다고  기꺼워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생각하며  다음  점검  농지로  이동했다.

                 ‘어!  저긴  왜  저래?’  멀리서부터  초록빛이  아닌  흑색이  도드라
             진다.  가까이서  보니  역시나  아무것도  심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육상부  운동장  트랙처럼  아주  고르고  평평하게  논이  정리되어
             있다.  신청인에게  전화하니  싹이  나지  않아  갈아엎었다고  한다.

             목소리에  적잖은  아쉬움이  묻어난다.  이럴  땐  부적합  농지로  판정
             하고  보조금은  지급되지  않는다.  일을  하다  보면  농사에  따라  내

             마음도  풍작과  흉작을  오간다.
                 지금처럼  부적합  농지를  마주할  때면  마치  내  잘못인  양  마음이

             헛헛해진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일을  하는  모든  조사
             원들이  그럴  것이다.  죄송한  마음에  휑한  논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혼잣말로  부탁한다.  ‘내년에  꼭  초록초록  얼굴로  다시  보자’
                 다음  농지를  보러  모퉁이를  돌고  다리를  건넌다.  큼지막한  논에

             초록  물결이  가득하다.  마치  잔디  구장  같다.  ‘오~~  좋아,  좋아!

             보나마나  적합~’
                앞서  부적합으로  인해  안타까웠던  마음이  저만치  달아나  버린다.
             이렇게  신청한  대로  사료가  잘  자라고  있어야  내  마음도  홀가분

             해진다.  ‘엥?  그런데  이건  뭐지?’  뭔가  좀  이상하다.  겉으로  보면

             커다란  한  개의  논으로  보이나  지적도  영상엔  각각의  3개의  지번
             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이어진  두  개의  농지와  달리  마지막



                                                                수기모음•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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