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우리는 민원담당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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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7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어르신이  봄  햇살  가운데  서
             계셨다.  장기간  병원  생활  때문인지  조금  수척해  보인다.  그러나

             노력한  만큼  내어주는  정직한  흙과  평생을  함께한  세월이  온몸에서
             묻어난다.  얼핏  그리운  아버지  생각이  나  옷매무새를  바로하고

             차에서  내렸다.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니  어르신은  다짜고짜  분명히
             심었다고  강조하시며  같이  가보자고  하신다.  그렇게  어르신이

             앞장서고  나는  잘못한  학생마냥  잔뜩  긴장하며  뒤를  따른다.  평생을
             논에서  사신  어르신은  좁고  미끄러운  논둑을  훨훨  나는  듯하다.

             논  끝으로  다다르니  어제  보이지  않던  노란  말뚝이  땅에  박혀
             있는  것이  보인다.  아마도  농지  경계  표시인가  보다.  지적도  영상을

             크게  확대하여  지금  서  있는  현장과  수차례  비교해서  설명해
             드렸다.  여전히  확신에  가득  차  있음은  물론이요,  자신을  의심하는

             듯한  나를  향한  노기가  은연  듯  묻어난다.  그런데  지적도와  논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어르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혀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셨다.
                 “노란  말뚝  있는  저기까지만  내  땅이지.  저긴  남의  땅이지”

                 내가  잘  못  본  것인가  하여  지적도  영상에  나타난  내  위치를

             체크하며  주변을  몇  바퀴  돌아봐도  어르신이  신청한  농지가  맞다.
             긴가민가하시는  어르신께  지적도  영상과  실제  주변  하나하나를
             비교하며  반복  설명해  드리자  당황스러워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지금까지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먼.  나는  저  말뚝까지만  내  땅

             인지  알았어,  이렇게  와서  확인해  주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네.
             정말  고맙네,  고마우이”



                                                                수기모음•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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