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우리는 민원담당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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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뭐라고요? 몇 년째 아들놈이랑 같이 돼지를
키워왔는데 왜 뺀다는 거야? 다시 넣어 놔요!”라고 소리치셨다.
그는 사업자등록, 허가 모두 공동명의로 되어있고, 출하도 각자
하는데 왜 등록이 안 되는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며 불같이
화를 내셨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L씨의 분노 속에서 겨우 틈을
잡아서, “이런 경우에는 번거로우시겠지만, 아드님이 별도로 경영체
신규 신청을 하시면 돼요.”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드리니 L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를 누그러뜨리고 돌아갔다. 그렇지만 L씨의
불같은 분노와 무자비한 폭언에 상처 난 마음을 다독일 시간도
없이, 나는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민원인들을 맞이해야 했다.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 와중에 잠시 민원인이
줄어든 그날 오후, 거구의 한 젊은이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민원
인과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몸과 마음이 긴장되고 오늘 하루가
정말 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보니, 오전에 방문한 L씨의 등록제외 된
아들 Y씨로 경영체 신규 신청을 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로 그가 가져온 서류를 잘 살펴보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L씨의 돼지 사육 마릿수를 아그릭스 시스템
입력하려는데 축산물품질평가원의 축산물이력제 12) 에서 아들 Y씨의
이름으로 조회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어? 이력제 시스템에 선생님
아버지 외 1인으로 조회가 될 뿐 선생님 이름으로는 확인이 되지
12) 소·돼지·닭 등 축산물의 도축부터 판매까지 정보를 기록·관리하는 제도(소·
돼지의 경우 생산부터 관리)
22•2020년 농관원 민원 수기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