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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를  심었다.’는  말씀만  되풀이하다가  나중엔  예초기를  메고,
             그  논으로  가서  키가  껑충한  잡초를  베셨단다.  주임님도  장화를

             신고  따라  논에  들어갔단다.  다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찬찬히
             봤지만,  미나리의  존재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농가도

             마찬가지였단다.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단다.
                 결국  함께  논둑으로  올라왔다고  했다.  주임님이  미재배  사실에

             대해  확인  서명을  요청하자  농가는  한참을  눈만  끔벅거리며  가타
             부타  말을  하지  않으셨단다.  그러다  할  수  없다는  듯  태블릿에

             저장한  사진에  ‘미나리  없음’이라  쓰고  그  옆에  서명하셨고,  조사
             표에도  자필로  특이사항란에  ‘미재배’,  서명란에  이름을  적으셨다고

             했다.  다른  날보다  두  배는  더  힘들었단다.
                 그렇게  잘  끝난  줄  알았는데,  문제는  뒤에  일어났다.  한  해

             업무를  마감하던  12월  중순쯤  그분이  본원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자신은  분명  미나리를  심었으나  일기불순으로  생육이  불량한  건데,

             농관원의  불성실한  업무처리로  지원금을  못  받게  됐다.  거기다가
             직원들이  농업인을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내용을  전해들은  나는

             뭔가  오해를  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분을  만나러  갔다.

                 나는  그분과  그  논둑에  섰다.  겨울이라서  우거진  잡풀도  사라진
             상태였다.  첫  번째,  두  번째    농지에서는  미나리  재배  흔적을
             여전히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농지에서  미나리가  말라

             죽은  흔적  일부를  발견했다.  해당  농지에  벼를  재배한  사실이  없고,

             일기가  불순하여  미나리  작황이  안  좋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제야  그분은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후  마지막  농지에



             64•2020년  농관원  민원  수기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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